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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적 독특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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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적 독특성


첫째, 그리스도는 우리를 더 큰 의로 부르신다.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5:20). 제자들은 이 말씀을 듣고 분명 말문이 막혀 버렸을 것이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야말로 그 땅에서 가장 의로운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율법에는 248개의 명령과 365개의 금령을 포함하여 총 613개의 규정이 있다는 것을 계산했고, 제비 뽑기 방식을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했을 정도였다! 이제 예수님은 제자들이 이 가장 의로운 사람들보다 더 의롭지 않으면, 결코 그 나라에 들어가지조차 못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주님이 이성을 잃으셨는가? 아니다. 그리스도인의 의가 바리새인의 의보다 더 큰 것은 그들의 의가 바리새인의 의보다 더 깊기 때문이다. 그것은 마음의 의다. 그러므로 그것은 새로운 탄생으로 말미암은 새로운 마음을 필요로 한다.


둘째, 그리스도는 우리를 더 넓은 사랑으로 부르신다. 그분이 말씀하신 여섯 가지 대구 중 마지막은 이렇다.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5:43-44).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는 말은 구약 성경을 모욕적으로 잘못 인용한 것이다. 율법은 네 이웃을 사랑하라”(19:18)고 말했다. 다음과 같이 말하면서 괘씸한 궤변에 빠졌던 것은 바리새인들이었다. “내 이웃은 내 동료 종교인이다. 그러므로 만일 내가 사랑해야 하는 것이 내 이웃뿐이라면, 율법 자체가 나에게 원수를 미워하도록 허락한 셈이다.”


예수님은 우리의 이웃에는 우리의 원수가 포함된다고 역설하시면서 하나님의 언어로 대응하셨다. 그러므로 만일 우리가 우리의 원수를 사랑한다면, 우리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진정한 자녀가 될 것이다. 그분은 햇빛과 비를 모든 사람에게 차별 없이 주시기 때문이다. 그분의 사랑은 모두가 포용하므로, 우리 또한 그래야 한다.


셋째, 그리스도는 우리를 더 고상한 야망으로 부르신다. 모든 인간에게는 야망이 있다. 야망이란 성공하려는 열망이다. 예수님의 말씀으로 보면, 야망은 우리가 구하는것으로, 우리의 삶을 바치는 지고선(至高善) 곧 거기에 우리의 마음을 두는 것이다. 예수님의 가르침에 의하면, 결국 오직 두 개의 선택이 있을 뿐이다. 우리 자신과 우리의 물질적 안락을 우선시하거나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거나 둘 중 하나다(6:31-34). 우리 자신과 몸(먹고 마시고 입는 것)에 몰두하는 것은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는 절망적으로 부적절하다. 주의 기도에서 예수님은 이미 우리의 우선순위가 무엇이어야 할지를 설정하셨는데, 이른바 하나님의 이름과 나라와 뜻이다.


이제 우리에게는 그리스도의 부르심 ─ 더 큰 의(마음의 의), 더 넓은 사랑(원수 사랑), 더 고상한 야망(하나님의 통치와 하나님의 의)을 향한 ─ 이 있다. 오직 이러한 부르심이 있은 연후에야 비로소 우리의 소금은 그 짠 맛을 유지하고, 우리의 빛은 그 밝음을 유지함으로써, 우리는 세상의 소금과 빛이 될 것이다.


특별히 우리는 비관주의에 대해 회개할 필요가 있다. 그리스도인들은 비관주의자가 될 하등의 이유가 없다. 신앙과 비관주의는 양립할 수 없다. 분명히 우리는 몽상적인 이상주의자가 아니며, 실제적인 현실주의자다. 우리는 죄가 인간 본성과 인간 사회 속에 깊이 배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우리는 유토피아가 건설되리라고 기대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또한 복음이 변화의 힘을 갖고 있으며,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세상 속에서 효과적인 소금과 빛이 되라고 위임하셨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 자신을 변화의 대행자로 하나님에게 드리자. 소수자 콤플렉스를 내세우며 자신을 변호하지 말자.


다음은 미국의 유니테리언 목사이자 작가인 에드워드 에버렛 헤일(Edward Everett Hale, 1822-1909)이 보여 준 낙관주의인데, 그는 매사추세츠의 보스턴에서 살았던 사람으로서, 자신의 이야기 열 곱하기 하나는 열(Ten Time One is Ten)을 통해 많은 사람에게 영감을 불어넣었다.



나는 단지 한 사람이지만,

나는 사람이다.

나는 모든 것을 할 수는 없지만,

나는 무엇인가 할 수 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나는 해야만 한다.

그리고 내가 해야만 하는 것을,

하나님의 은혜로

할 것이다.



만일 이것이 한 명의 그리스도인 개인에게 진실이라면, 교회가 미칠 수 있는 영향력은 얼마나 더 크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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