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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 예배의 영성이 전도의 영성으로 나타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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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용훈 목사의 생생 전도 특강

Lesson 04. 예배의 영성이 전도의 영성으로 나타나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예배를 통해 우리에게 맑은 생수의 강을 부으신다. 우리가 받은 생수를 그때그때 세상으로 흘려보내지 않으면 안에서 고이게 되고 오래되면 결국 썩는다.


어느 전도자의 간증이 우리에게 경종을 울린다. 그는 복음을 통하여 구원의 감격을 누리기 시작하면서 이웃의 한 아주머니에게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부담이 있었다. 그러나 내성적인 성격 탓에 그 아주머니에게 한 마디도 예수님을 소개하지 못한 채 그 아주머니가 죽고 말았다. 아주머니가 죽고 나서 며칠이 지난 어느 날, 그는 너무나 끔찍한 꿈을 꾸었다.


아주머니가 지옥불에서 고통을 당하면서 새빨간 눈으로 자기를 노려보면서 이렇게 묻는 것이었다.


"왜 내게 예수님을 전하지 않았어요?"


그는 하나님께서 꿈을 통해 음성을 주신 것으로 확신하고 이후 자기의 내성적인 성격에 더 이상 묶여 있지 않고, 성령께서 주신 권능으로 증인된 삶을 살게 되었다고 한다.


사무엘상 17장에 나오는 다윗의 고백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중요한 사실을 계시하신다.


다윗이 사울에게 말하되 주의 종이 아버지의 양을 지킬 때에 사자나 곰이 와서 양 떼에서 새끼를 물어가면 내가 따라가서 그것을 치고 그 입에서 새끼를 건져내었고 그것이 일어나 나를 해하고자 하면 내가 그 수염을 잡고 그것을 쳐죽였나이다(삼상17:34,35).


다윗은 참된 예배자였고 동시에 야전(野戰)의 용사였다. 즉, 다윗은 야성적 영성을 소유한 예배자다. '사자나 곰' 은 영혼들을 지옥으로 끌고 가려는 사단과 악한 영을 상징한다. 사자나 곰의 입에 먹혀들어가고 있는 '양' 은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잃어버린 자를 상징한다. 다윗은 성실한 목자였다. 양을 잡아먹으려는 사자나 곰을 그냥 내버려두는 것은 참된 목자가 아니다. 성실한 목자는 야전의 전사다. 다윗은 사자나 곰을 치고 그 입에서 새끼를 건져냈다. 다윗의 후손인 인자가 오신 목적도 바로 그것이었다.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눅19:10).


성령충만 받은 제자들은 전도하기를 쉬지 않았으며 예수님의 이름 때문에 능욕을 받는 것을 기뻐했다.


사도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룍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공회 앞을 떠나니라 그들이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니라(행5:41,42).


한국에서는 다윗의 장막 회복 운동이 한창이다. 이러한 영적 분위기에서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 있다. 다윗의 장막 회복 운동은 다윗의 야성도 회복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 다윗의 야성이 바로 예수님의 영성이다. 누구의 장막인지를 놓쳐서는 안 된다. 바로 야전의 전사였던 '다윗' 의 장막이다. 신랑이신 예수님을 맞이해야 하는 신부의 영성은 장막 안에서 기름부으심을 받는 것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다. 그 기름을 왜 부으시는가를 생각해야 한다. 우리가 장막 안에서 그토록 원했던 성령님, 그분이 예수를 증거하는 영이시다.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부터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언하실 것이요 너희도 처음부터 나와 함께 있었으므로 증언하느니라(요15:26,27).


요한복음 15장 27절의 '증언하느니라' 라고 번역된 것이 원문에는 'must testify(반드시 증언해야만 한다)' 라고 확실하게 표현되어 있다.


수많은 예배의 현장들이 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장막 안에 모여서 열광적으로 찬양하며 말씀을 선포한다. 그런데 성령충만한 그 현장을 나와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자기 옆을 지나가는 사람들의 영혼에 관심이 없는 모습들을 본다. 예배 때 그토록 찾고 사모했던 성령님이 '증거의 영' 이심을 놓치고 있는 것이다.


베드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이유가 예배자로 부르시기 위함이고 예배자로 부르신 이유는 하나님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기 위함이라고 말하고 있다.


너희도 산 돌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벧전2:5).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벧전2:9).


불신자에게 전도하는 자리가 바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자리이다. 찬양이 무엇인가? 하나님을 칭찬하고 자랑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먼저 믿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모르는 이에게 가서 하나님은 창조주이시고 구원자이시고 사랑이시라고 자랑하기를 에타게 원하신다. 교회사를 살펴보라. 부흥의 순간마다 현장에서 성령의 기름부으심을 받은 자들은 즉시로 나가서 전도했던 것을 알 수 있다. 예배를 통해 받은 기름부으심은 세상에 나가 복음을 전파하는 것으로 나타나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마지막 때에 신부의 영성으로 준비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신부는 교회다. 바울은 에베소서에서 교회론을 논할 때 5장의 신랑과 신부의 친밀함이란 주제로 끝맺지 않는다. 에베소서 5장은 영적전쟁장인 6장으로 진행한다. 바울은 주의 얼굴만 구하는 친밀함을 가지고 밖에 나가서 원수들과 싸워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마귀가 무서워 떠는 것은 하나님과의 친밀함에 머물러 있는 자들이 아니라, 그 친밀함을 가지고 세상으로 나가서 복음을 전하는 자들이다.


바울은 에베소서 6장에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고 한다. 하나님의 전신갑주는 진리의 허리띠, 의의 흉배, 평안의 복음의 신, 믿음의 방패, 구원의 투구 그리고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이다. 한마디로 십자가의 도(道)로 무장하라는 것이다. 진리의 중심은 십자가이다. 의(義)가 이루어진 곳도 십자가다. 평안의 복음의 핵심도, 믿음의 근거도, 구원이 이루어진 곳도 십자가다. 성령의 검인 하나님의 말씀 즉, 말씀 중의 말씀이 바로 십자가의 도이다.


우리는 교회 안에서든지 세상에서든지 십자가의 말씀을 전파해야 한다. 마귀는 십자가의 말씀 선포를 가장 두려워한다. 마귀가 실패한 곳이 십자가이기 때문이다.


오직 은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 것으로서 곧 감추어졌던 것인데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을 위하여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것이라 이 지혜는 이 세대의 통치자들이 한 사람도 알지 못하였나니 만일 알았더라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박지 아니하였으리라(고전2:7,8).


바울은 에베소서 6장에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고 무시로 성령 안에서 깨어 기도하라고 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을 맺는다.


또 나를 위하여 그할 것은 내게 말씀을 주사 나로 입을 열어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알리게 하옵소서 할 것이니 이 일을 위하여 내가 쇠사슬에 매인 사신이 된 것은 나로 이 일에 당연히 할 말을 담대히 하게 하려 하심이라(엡6:19,20).


바울은 감옥에 갇혀 쇠사슬에 매인 상태에서도 복음의 비밀을 말하고 싶어 했고 당연히 해야 할 말을 담대히 하기를 원했다.


예배당과 기도의 집에서 24시간 동안 기도하고 찬양하고 예배하는 것은 참으로 귀한 일이다. 그러나 마귀가 우는 사자와 같이 한 영혼이라도 더 지옥으로 끌고 가려고 하는 이때에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은 신부들이 장막 안에서 주의 얼굴만을 바라고 있다면 신랑되신 주님이 뭐라 하실까? 주님 다시 오실 때가 심히 가까이 다가왔다면 아가페 사랑을 받은 자로서 군사된 신부로서 한 영혼이라도 더 주님 품으로 돌아오도록 사도 바울의 영성을 가지고 전도하러 나가야 할 것이다.


마지막 때에 열방과 이스라엘을 품는 중보자와 예배자들은 참으로 귀하다. 사자나 곰으루보터 양을 잘 지켜내는 것부터 했던 다위이 결국 나중에 나라(이스라엘)를 구한 것을 중보자들과 예배자들이 거울 삼기를 바란다. 다윗은 현실에 뿌리 내린 야성적 영성의 예배자로서 국가를 위기에서 건져냈다. 한 마리의 양을 건지는 일과 나라를 건지는 일이 연결되어 있다.


거창한 중보의 제목, 열방과 이스라엘의 회복에만 관심을 가질 것이 아니다. 일상 속에서 주님이 찾으시는 잃어버린 한 영혼을 악한 영으로부터 건지는 일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러한 중보자들과 예배자들의 기도와 찬양을 주님께서 들으시고 열방과 이스라엘을 더 신속히 회복시킬 것이다.


가까운 마을에서부터 전도하신 주님이 결국 온 열방과 이스라엘을 위하여 십자가를 감당하셨다. 그 주님을 생각하자. 그 주님이 작은 일부터 충성하라 하신다.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마2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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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sson 01. 전도는 방학 숙제가 아니다

http://godtoyou.kr/b1010/83


Lesson 02. 전도하지 않는 이유

http://godtoyou.kr/b1010/84


Lesson 03. 전도, 어떻게 할 것인가

http://godtoyou.kr/b1010/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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