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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 시작은, 가정에서부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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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예배 시작은, 가정에서부터입니다.

본문 : 빌레몬서 1:1~3


1. 그리스도 예수를 위하여 갇힌 자 된 바울과 및 형제 디모데는 우리의 사랑을 받는 자요 동역자인 빌레몬과

1. 그리스도 예수님을 전파하다가 갇힌 바울과 디모데는 사랑하는 동역자 빌레몬과 (현대인의 성경)


2. 자매 압비아와 우리와 함께 병사 된 아킵보와 네 집에 있는 교회에 편지하노니

2. 자매 압비아와 우리와 함께 군사가 된 아킵보와 그대의 가정 교회에 편지를 씁니다. (우리말성경)

2. 자매 압비아와 우리의 전우인 아킵보와 그대의 집에 모이는 교회에, 이 편지를 씁니다. (새번역)


3.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은, 빌레몬서입니다.

빌레몬은 인명인데, 그 뜻은 ‘애정 있는 사람’입니다.

빌레몬은 사랑도…, 정도…, 많은 사람입니다.

이 빌레몬을, 말씀에서 비추어 볼 때 중장년 이상의 나이와 가족들과 함께 규모 있는 집에서 사는 신실한 사람(6절)이었음을 볼 수 있습니다.


2절에 보면, 자매 압비아가 나오는데, 빌레몬의 아내입니다.

또한 병사 된 아킵보는 장성한 청년인데, 빌레몬의 아들입니다.

그리고 집에 있는 교회 즉, 집안에 있는 사람들 또는 빌레몬 집에 모이는 사람들인데, 이를 교회라고 표현한 걸 보면, 가족 인원수 이상의 사람들과 함께 모여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공간이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물론 이때의 사람이라면, 건물 중심의 교회가 시작되기 전의 시기이기 때문에, 크게 고민할 필요도 없었고, 편안하게 생각하면 되었습니다.


하지만, 건물 중심의 교회가 시작되는 시기, 예수 그리스도 승천 후 200년 이후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복음에 참여한 모든 사람들은 서서히 건물 중심의 교회로 찾아가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삶으로 익숙하게 살아 왔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시대가 악하게 변한 것입니다.

아무리 성경적인 본질적 교회로 다시 돌아가고 싶어도 너무나 쉽지 않은 것은, 이미 지구촌 곳곳에 수많은 건물 중심의 교회들로 건축되었다는 현실입니다.

어쩌면 우리가 초대교회를 말하면서도, 남들처럼 욕심을 부리는 것은 아닌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마가복음 14:58

우리가 그의 말을 들으니 손으로 지은 이 성전을 내가 헐고 손으로 짓지 아니한 다른 성전을 (내가) 사흘 동안에 지으리라 하더라 하되


사랑하는 여러분,

1장 1절 앞 구절을 보면, “그리스도 예수를 위하여 갇힌 자 된 바울과 및 형제 디모데는” 으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빌레몬서에서 보면, 다섯 번이나 ‘갇힌 자’로 번역하여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나오는 절박한 사도 바울의 서신이었다는 것입니다.

말씀에서 ‘갇힌 자’로 번역된 헬라어는, 그 뜻을 직역하면 ‘쇠사슬’입니다.

즉, 때는 바울과 형제 디모데가 감옥에 있었는데, 쇠사슬에 묶여 있는 죄인의 상태라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과 디모데가 감옥에 있는 이유는, 1절에 그리스도 예수님을 전파하다가…, 였습니다.

복음을 전하다가, 세상의 법과 제도에 붙잡혀 감옥에 있다는 겁니다.

세상은 이처럼, 진리에 아둔한 것입니다.


이때 사도 바울은, 감옥에서 비록 ‘쇠사슬’에 묶여 있는 죄인인 신분에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의 사랑을 받은 종으로서 그리스도 예수를 위하여…,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해야만 했습니다.

이는, 빌레몬과 교회들에게 영적인 ‘쇠사슬’에 묶이지 않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그 대상은 첫 번째로 빌레몬이었고, 그 다음은 가족이었으며, 마지막으로 함께 예배드리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특별히 오늘, 서두 부분의 말씀을 본문으로 삼은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 즉, 교회는 어떠한 상황과 환경에서도 결코 굴하지 말아야 한다는 겁니다.


로마서 1:16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고린도전서 9:16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이로다


복음을 전한다는 것은, 사도 바울에게만 해당되는 게 아닙니다.

사도 바울의 고백이 무엇입니까?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했습니다.

이를, 현대인의 성경으로 보면, ‘내가 반드시 해야 할 일이기 때문입니다’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때 사도 바울은 나이가 많았고(9절), 순교 당하기 바로 전입니다.

곧 죽음을 앞에 두고서라도, 그리스도 예수를 위하여…, 마땅히 그는 해야 할 일을 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우리 믿는 이들은 세상의 법과 제도를, 100% 정화할 수 없습니다.

세상의 떼를 벗기려고 노력하면 노력할수록, 그건 잠시뿐이란 걸 알게 됩니다.

하지만, 영혼의 떼를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것은, 결코 헛된 일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전도서 12:12~14

12. 내 아들아 또 이것들로부터 경계를 받으라 많은 책들을 짓는 것(읽는 것)은 끝이 없고 많이 공부하는 것은 몸을 피곤하게 하느니라

13.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들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모든 사람의 본분이니라

14.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 간에 심판하시리라


하나님은 ‘모든 행위’ 즉, 곁(밖)과 ‘모든 은밀한 일’ 즉, 속(안)까지 다 아시고 마지막엔 선악 간에 심판하시겠다는 엄중한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본문의 빌레몬서에는, ‘오네시모’라는 인물이 중요하게 등장합니다.

오네시모 이름의 뜻은 ‘유익한, 이익’입니다.

11절에, “그가 전에는 네게 무익하였으나 이제는 나와 네게 유익하므로…”


오네시모는 빌레몬 집안의 노예입니다.

오네시모는 노예 신분의 사람인데, 주인의 물건을 훔치고 도주합니다.

주인이 무서운 오네시모는 그 당시 범죄인의 은신처였던 대도시 로마로 가게 됩니다.

오네시모는 참으로 마음과 몸이 힘들었을 겁니다.

주인의 것을 훔치고 도주한 신세이기 때문에, 항상 그의 마음은 편치 않았습니다.


감옥에서 만난(10절) 두 사람은 사도 바울이 전하는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오네시모’에게 그리스도의 사랑이 전해 졌으며, 그 곳에서 그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받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게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죄인이었던 사람이, 언제 어느 때에 복음으로 거듭날지, 하나님 외엔 마귀도 사람도 아무도 모르는 일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저, 감옥에서라도 부득불 복음을 전했을 뿐입니다.

그때, 오네시모는 복음으로 다시 태어난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도 바울을 감옥으로 보내지 않았다면, 하나님이 오네시모를 감옥으로 보내지 않았다면, 두 사람의 만남은 없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감옥이라는 특수한 곳으로, 두 사람을 만나게 하신 것입니다.

쫓기는 신세였던 오네시모는 그래서, 복음을 진실로 들을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만나게 하시는 장소는 좋은 곳일 수도 있고, 아주 나쁜 곳일 수도 있습니다. 문제는 복음으로 태어난 내가(우리가), 그 어떤 장소에서도 복음을 전할 수 있는 믿음이 되었는가! 입니다.


두 사람은 서로, 몰랐던 사람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카이로스(때)로 두 사람은 만났고, 복음으로 형제가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이 마음으로 생각했던 오네시모는 아주 특별했습니다.

12절, “그는 내 심복(심장, 중심, 마음)이라” 이처럼 표현할 수 있었던 복음의 능력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 이 얼마나 위대한 하나님의 은혜가 아닙니까?

할렐루야~


사랑하는 여러분,

본문의 내용에 대해서, 조금 더 살펴보겠습니다.


이렇듯, 감옥에서 만난 두 사람은 이제 복음으로 사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때, 사도 바울은 ‘오네시모’를 복음을 위하여 끝까지 함께 하기를 원했습니다.

하지만, 오네시모가 빌레몬의 노예였다는 걸 알았기 때문에, 더 이상 가까이 둘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오네시모를 주인인 빌레몬의 집으로 돌려보내기로 합니다.


빌레몬서 1장 10~14절을 보겠습니다.

10. 갇힌 중에서 낳은 아들 오네시모를 위하여 네게 간구하노라

11. 그가 전에는 네게 무익하였으나 이제는 나와 네게 유익하므로

12. 네게 그를 돌려 보내노니 그는 내 심복이라

13. 그를 내게 머물러 있게 하여 내 복음을 위하여 갇힌 중에서 네 대신 나를 섬기게 하고자 하나

14. 다만 네 승낙이 없이는 내가 아무 것도 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너의 선한 일이 억지 같이 되지 아니하고 자의(자유의지)로 되게 하려 함이라


사도 바울은, 복음을 위해서라면 욕심을 부리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복음을 위해서라지만, 욕심을 부리면서까지 복음을 전하다 보면, 반드시 욕심 이상의 오류가 생기기 마련입니다.

충분히, 오네시모를 가까이 두게 하여…, 복음을 위하여…, 사도 바울을 섬길 수 있도록 할 수도 있었지만(13절), 사도 바울은 빌레몬과 오네시모의 관계를 먼저 생각했습니다.


오네시모를 자기의 심복처럼 생각했던 사도 바울은, 빌레몬보다 오네시모를 더 많이 생각했기에 주인인 빌레몬과 노예인 오네시모의 관계 회복을 위해 중재하는 위치에서 헌신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습니다.

이는, 사도 바울의 인성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가!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오네시모 역시, 복음으로 회심하기 전과 후의 모습이 완전히 달랐습니다.

회심하기 전의 그는, 좋은 주인 밑에 있었지만, 환경과 정신적으로 매우 힘들었고, 불안했습니다. 또한 그는, 주인의 물건을 훔쳐 도주한 사람이기에 건강한 정신 상태도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회심한 후 오네시모는 믿음으로 담대해 졌습니다.

영적으로 묶였던 ‘쇠사슬’에서 완전히 풀려난 것입니다. 자유해진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오네시모를 내 심복이라 할 정도로 귀한 사람으로 변했다는 겁니다.

이름의 뜻처럼, 유익한 사람으로 완전히 다시 태어난 것입니다.

오네시모는 더 이상, 복음으로 불안할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그는, 복음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다 할 수 있는 믿음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저와 여러분은 지금까지 오네시모와 다를 바 없는 사람처럼 살았습니다.

마귀의 종노릇하는 노예로 사는 인생으로 살았습니다.

오네시모의 신분은 노예였지만, 빌레몬 집안에서 그는 존귀한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잠시, 하나님께서 그 비밀을 감추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오네시모를 세상의 노예에서 세상에 유익(소금과 빛)을 주는 사람으로 준비하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빌레몬 가정 교회에 없어서는 안 될 믿음의 사람으로 다시 돌려보내게 된 것입니다.


빌레몬서 1장 15~18절을 보겠습니다.

15. 아마 그가 잠시 떠나게 된 것은 너로 하여금 그를 영원히 두게 함이리니

16. 이 후로는 종과 같이 대하지 아니하고 종 이상으로 곧 사랑 받는 형제로 둘 자라 내게 특별히 그러하거든 하물며 육신과 주 안에서 상관된 네게랴

17. 그러므로 네가 나를 동역자로 알진대 그를 영접하기를 내게 하듯 하고

18. 그가 만일 네게 불의를 하였거나 네게 빚진 것이 있으면 그것을 내 앞으로 계산하라


사도 바울은 감옥에서 쇠사슬에 묶인 가운데, 오네시모를 보증하듯 주인인 빌레몬에게 서신으로 이야기합니다.

15절에, “아마 그(오네시모)가 잠시 떠나게 된 것은…,” 이는 아버지의 사랑으로 표현하는 바울의 깊은 내면에서 올라오는 영성일 것입니다.


그러면서, 서신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 후로는 종과 같이 대하지 아니하고 종 이상으로 곧 사랑 받는 형제로 둘 자라”

“내게 특별히 그러하거든 하물며 육신과 주 안에서 상관된 네게랴”


오네시모는, 사도 바울에게 특별한 형제였기에…, 종 이상으로 곧 사랑 받는 형제로 둘 자라…, 고 심장으로 표현하며 강한 확신을 심어주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처럼, 사도 바울과 오네시모의 관계는 특별히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신뢰가 두터운 관계에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이처럼 확신하며 빌레몬에게 오네시모를 이야기하는 것은, 사도 바울의 마지막을 오네시모에게 다 쏟아 부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17~18절에 분명하게 다시 표현합니다.

“그를 영접하기를 내게 하듯 하고…, 그가 만일 네게 불의를 하였거나 네게 빚진 것이 있으면 그것을 내 앞으로 계산하라”

그리고 19절에, “네가 이 외에 네 자신이 내게 빚진 것은 내가 말하지 아니하노라”

사도 바울도, 빌레몬도, 오네시모도 모두가 다 복음에 빚진 자들입니다.

복음에 빚진 자는, 복음을 위해서 함께 십자가를 지는 것이며…, 주님의 교회를 위해서 함께 같이 걸어가는 것입니다.


빌레몬은, 사도 바울의 제자입니다.

사도 바울이 빌레몬의 노예였던 오네시모를 위해, 이처럼 확신에 찬 표현으로 말할 수 있었던 건, 하나님의 능력과 사도 바울의 믿음에서 이뤄낸 작품이었습니다.

그리고 끝까지 복음을 위해서라면…, 최선을 다하는 사도 바울의 진짜 모습에 빌레몬은 더 이상 사도 바울의 서신에 토를 달 수 없었을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빌레몬서 1장 20~22절을 보겠습니다.

20. 오 형제여 나로 주 안에서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얻게 하고 내 마음이 그리스도 안에서 평안하게 하라

21. 나는 네가 순종할 것을 확신하므로 네게 썼노니 네가 내가 말한 것보다 더 행할 줄을 아노라

22. 오직 너는 나를 위하여 숙소를 마련하라 너희 기도로 내가 너희에게 나아갈 수 있기를 바라노라


사도 바울은 빌레몬에게 서신을 마무리 하면서 “오 형제여”로 시작합니다.

그리고 형제 빌레몬을 위해 기쁨과 평안을 빌어주며, 마지막으로 한번 더 부탁과 확신에 찬 마음으로 마무리 합니다.

그러면서 22절에, 중보를 부탁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결국, 사도 바울과 오네시모 그리고 빌레몬과 가족들 그리고 모인 모든 사람들까지 하나님은 가정 교회에서 원하시는 예배를 받으시려고 빌레몬 집안 중심에 오네시모를 준비하셨던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원하시는 한 번의 예배를 위하여…, 다시 연출하신 것입니다.

할렐루야~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주님은 반드시 잘되게 하십니다.



글, 김병일 목사

♥ 웹선교 후원 : 토스뱅크 1000-0199-7978 (김병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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