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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 전도, 어떻게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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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용훈 목사의 생생 전도 특강

Lesson 03. 전도, 어떻게 할 것인가



1. 지도자들의 솔선수범이 필요하다

영적 지도자들과 서도들이 '예배' 라는 단어 앞에서는 열정이 끓어오르고 사모하는 마음을 표현한다. 그러나 '전도' 라는 단어 앞에서는 작아진다. 내가 여러 공동체에 가서 전도에 대해 도전을 할 때 공통적인 반응이 있다. 특히 주의 종들과 신앙의 연조(年條)가 깊은 사람들이 비슷한 반응을 보인다.


"저도 옛날에 신학교 다닐 때 전도훈련 많이 받았죠. 전철 타고 다니면서도 하고 길에서도 전도했어요."


왕년에 자신도 전도했다는 것이다. 나는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다시 되묻고 싶다.


'그런데 지금은요?'


많은 지도자들이 세상 앞에서 담대하지 못하고, 전도라는 단어 앞에서 약한 모습을 보인다. 수많은 교회의 지도자들이 예배당 안에서는 담대히 복음을 선포하고 탁월한 강의를 하지만 세상 사람들 앞에서는 벙어리가 된다. 도리어 세상 앞에서 힘껏 외쳐야 할 복음이 아닌가?


무엇이 그들로 하여금 전도의 열정을 식게 했는가? 성도들에게 복음을 전파하라고 말하기 전에 지도자들이 먼저 전도자의 삶을 살아간다면 성도들은 자연스레 본받게 될 것이다. 내가 하지 않는 것을 남에게 하라고 할 때 그 말에는 힘이 없다. 지도자들이 겸손하게 전도하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그 지도자의 말에는 능력이 7배나 더해지리라 확신한다.



2. 이벤트에 그치지 말고 생활 전도로 나아가자

지역교회 및 선교단체 등에서 전도를 많이 하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한 달에 한 번, 혹은 일주일에 한 번 하는 이벤트로 끝나는 모습을 자주 본다. 이벤트적인 전도는 생활 속에서 전도자로서 살아가게 할 목적을 지향해야 한다.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딤후4:2).


항상 말씀을 전파하라는 사도 바울의 권면 속에 두 때에 대한 표현이 있다.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이 부분에 해당하는 원어는 '유카이로스' 와 '아카이로스' 이다. 유카이로스는 '적시에, 알맞은 기회가 올 때에' 라는 뜻이고, 아카이로스는 '제철이 아닌, 시기에 맞지 않게' 라는 뜻이다. 그 두 단어는 '그리고(and)' 라는 단어로 연결되어 있다. 즉, '적절한 때 그리고 적절치 않을 때' 라는 말은 '시도 때도 없이 항상' 이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왜냐하면 오늘 나를 스쳐 지나가는 사람이 5-10분 뒤에 유명을 달리할 가능성이 충분히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러한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단 1,2분 사이로 천국행과 지옥행이 결정될 수 있다. 삼풍백화점, 성수대교, 대구 지하철 참사 그리고 911 테러 사건을 떠올려 보자. 몇 분 또는 몇 초 뒤에 나와 내 주변에 그러한 일이 닥치지 않는다고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공동체가 알맞은 때를 정해서 기도로 행사를 계획해서 전도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거기에 머물지 말고 일생생활에서 전도자로서 살아가도록 방향을 잡아주어야 한다. 이 말에 많은 사람들이 큰 부담을 가질 것을 안다.


'전도 자체가 쉽지 않은데 어떻게 일상생활 속에서 전도자로 계속 살아갈 수 있단 말인가?'


이러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에게 한 마디 조언을 하고 싶다.


"할 수 있는 가장 작은 것부터 하라."


우리는 일상 속에서 필연적으로 사람들을 접촉하게 된다. 세상 사람들을 자연스럽게 접촉하는 작은 순간들을 전도의 기회로 삼는 것이다. 예를 들면 주머니에 항상 전도지 한 장을 가지고 다니면서 하루 한 명 전도를 계획하는 것이다. 물건을 사고 돈을 주고 받을 때 계산하는 사람에게 전도지를 주면서 "예수 믿으세요" 라고 하며 나올 수도 있고, 톨게이트를 지날 때 영수증만 받고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전도자를 쓱 내밀고 "하나님이 사랑하십니다" 하는 것이다.


소극적이고 내성적인 사람들은 그래도 염려를 할 것이다. 그러나 걱정할 것 없다. 우선 무심코 전도지만이라도 전해주면 된다. 내가 전해주는 전도지 안에는 복음이 선포되어 있기 때문이다. 즉, 복음을 내 입술로 선포하는 것만이 전도가 아니라는 것이다.


작아 보이지만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을 포기하지 않고 꾸진히 하면 어느덧 강한 그리스도인이 되어 있는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 그것이 바로 다윗의 물맷돌의 영성이다.


다윗의 물매는 평상시 양을 돌보던 도구였다. 그는 성실히 매일 물매를 던졌다. 그때마다 그는 주위 사람들로부터 업신여김을 받았을지도 모른다.


"야, 넌 왜 그런 별 볼 일 없는 것을 가지고 매일 놀고 있니?"


그러나 다윗은 이것이 자기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것이라고 여기고 물매 연습을 게울리하지 않았다. 어느 날부터는 백발백중 물맷돌 실력이 되면서 사자나 곰으로부터 양을 지켜낼 수 있었고, 드디어 그 물맷돌은 나라를 구하는 데 쓰이게 된다. 상상할 수 없는 엄청난 일이 평범한 삶 속에서부터 준비되었던 것이다. 다윗은 처음부터 나라를 구하려고 물매 연습을 한 것이 아니다. 그저 양을 돌보기 위해서 했을 뿐이다.


19세기 바이올린의 거장 사라사테(Pablo de Sarasate)를 향해 많은 이들이 '천재 바이올리니스트' 라고 칭찬했다. 그러나 그는 혼잣말로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27년간 단 하루도 빼놓지 않고 매일같이 열네 시간씩 연습을 했는데, 내가 천재라고?"



3. 결과에 개의치 말고 전하자

전도에 있어서 지나치게 효율을 따지고 결과주의적인 발언을 하는 분들을 보면 한숨이 나온다. 영의 세계를 보지 못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주의 자녀들이 세상 앞에서 복음을 선포하면 주님이 친히 당신의 뜻을 이루신다.


스데반은 공중 앞에서 복음을 전하고 돌에 맞아 순교했다. 그의 눈으로는 좋은 결과를 보지 못했다. 스데반의 전도의 모습은 효율 면에서는 빵점이고 결과주의적인 면에서도 낙제다. 그러나 스데반이 돌에 맞아 죽는 현장에 있었던 사울이라는 청년이 빛 가운데 임하시는 주님을 만나고, 예수를 따르는 자들을 핍박하던 자에게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전파하는 자로 놀랍게 변화되었다.


사울이 바울이 된 것은 스데반의 순교의 결과이다. 그 바울은 기독교의 놀라운 진리 상아탑을 세웠으며 당시에 그가 직접 가원한 영혼도 많고 세운 교회도 많았지만 그가 쓴 서신으로 인해 기독교 2천년 역사 가운데 수십 억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오게 되고 수많은 교회가 세워졌다. 스데반은 비록 그 결과를 이 땅에서 보지 못했으나 그 순교의 피는 사울이라는 한 청년만 변화시킨 것이 아니라 일일이 다 나열하지 못할 정도의 놀라운 열매를 맺었다.


불특정 다수에게 복음을 선포하며 전도지를 뿌리는 것이 무슨 효과가 있겠냐고 반문하고 회의적인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믿음의 세계에서는 결과주의와 이성주의를 과감히 내려 놓아야 한다. 예수님의 이름 자체에 능력이 있다. 전도자가 능력의 이름 '예수' 를 외치는 그곳에 주의 생명이 나눠지고 악한 영들이 무서워 떨며 떠나가는 것을 믿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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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sson 01. 전도는 방학 숙제가 아니다

http://godtoyou.kr/b1010/83


Lesson 02. 전도하지 않는 이유

http://godtoyou.kr/b1010/84


Lesson 04. 예배의 영성이 전도의 영성으로 나타나야 한다

http://godtoyou.kr/b1010/86

♥ 웹선교 후원 : 토스뱅크 1000-0199-7978 (김병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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