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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자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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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를 막는 것으로 다음과 같은 것들을 예로 들 수 있다.


2. 자아

자아는 모든 죄악의 뿌리이다. 우리는 선행에까지도 얼마나 자기 의식에 사로잡히기 쉬운가? 우리는 자아가 갈구하는 것을 좀처럼 포기하려 하지 않는다. 손에 가득 들고는 그리스도의 선물을 받을 수 없다. 주님이 기도를 가르치시면서 마디마디에 우리라는 말을 넣으신 것도 이 때문이다.


우리 아버지여오늘도 우리에게우리가 우리에게우리 죄를우리를 시험에


교만은 기도를 방해한다. 왜냐하면 기도는 자기를 낮추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목전에 교만은 얼마나 가증한 것인가! 모든 것을 주셔서 풍성하게 누리게하시는 이는 하나님이다. 사도 바울은 네게 있는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뇨”(고전4:7)라고 묻는다.


진실로 우리의 교만이 그와 같은 유의 가증스럽고 사악한 질투와 합작하여 기도 생활을 파멸시키지 않기를 바라고 있는가? 우리가 좋아할 것이라도 그것이 교만하게하는 것이면 하나님은 그 일을 하실 수 없다. 그래도 좋다면 우리는 얼마나 어리석은 인간들인가?


때로는 고집을 부리면 우리가 성결을 희생하면서 구한 것을 주시기도 한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저희의 요구한 것을 주셨을지라도 그 영혼을 파리하게 하셨도다”(106:15)라는 말씀이 있지 않은가? “, 하나님! 그와 같은 처지에 들지 않게 하소서. 자아에서 나를 구출하소서!”


또한 자아는 타인을 비판하는 것을 좋아한다. 이런 생각 자체를 우리의 기억에서 완전히 소각해 버리자. 예수님을 많이 닮으면 닮을수록 타인을 적게 판단한다. 이것은 결코 오차가 없은 시금석이다. 항상 타인을 비판하는 사람은 그리스도로부터 떠난 사람이다. 여전히 그리스도의 사람일 수 있으나 사랑의 성령을 잃고 있는 것이다.


친애하는 독자들이여, 비판하는 성품이 있다면 자신만 비판하고 결코 이웃을 비판하지 말라. 그러면 당신은 그 본성에게 충분한 기회를 줄 수 있을 것이며, 또 활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귀에 거슬리는 말인가? 이것이 정죄하는 바로 그 죄(정죄하는 죄이기에)를 범하는 것으로 보이는가? 어떤 한 개인에게 한 말이라면 그럴 것이다. 그러나 그 목적은 아무리 보아도 뚫을 수 없을 것 같은 갑옷을 꿰뚫으려는 것이다.


한 달간만 타인의 평판을 꼬집거나 캐내는 혀를 제어해 둔다면 돌아서서 다시는 험담하지 않을 것이다.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고전13:4)라고 했다. 그렇게 하고 있는가? 확실한가?


다른 사람을 우리보다 나쁘게 채색할 수 있었다고 해서 우리가 더 나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가 타인을 멸시하는 말을 하는 것을 거부할 때, 다른 사람들의 일이나 생활에 대해 판단하는 것을 삼갈 때 영적 기쁨과 그리스도를 위한 우리 자신의 산 증거를 충분히 증가시킬 수 있다. 처음에는 다소 어려울 것이나 곧 말로 형언할 수 없는 기쁨이 따라올 것이며 도처에서 사랑으로 보답될 것이다.


현대 이단들 앞에서 침묵을 지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성도에게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를 위하여 힘써 싸우라”(3)는 말을 들어 보지 않았는가때로는 말하지 않으면 안 될 때도 있다. 그러나 항상 사랑으로 해야 한다. 사랑을 죽이느니 차라리 과실을 용납하라.


타인의 결점을 찾아내는 개인 기도까지도 단호히 피해야 한다. ‘냉정한 형제를 위해 기도한 존 하이드의 이야기를 다시 한번 읽어 보자. 사실 비판 정신은 그 무엇보다도 거룩한 생활을 파괴한다. 그것은 대단히 무서운 죄이며 우리를 쉽게 희생물로 만들어 버린다.


믿는 사람이 사랑이신 그리스도의 영으로 충만해 있다면, 그는 친구들에게서 발견할 수 있는 비그리스도적인 행동을 결코 타인에게 말하지 않을 것이라는 말은 더 부언할 필요가 없을 만큼 당연하다. “그는 너무 무례해.”라든지, “그는 너무 자만심이 강해.”, “나는 그 사람을 더 이상 참아 줄 수 없어.”라는 따위의 말은 분명히 불친절하고 불필요한 것이며, 어쩌면 진실하지 못한 평가이기도 하다.


사랑하는 우리 주님도 죄인들의 대항을 참으셨다. 그리고 주님은 다른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비평하거나 공개하지 않으셨다. 그런데 어찌하여 우리는 그렇게 하고 있단 말인가? 그리스도가 최고 지배자라면 자아는 단연 왕좌로부터 내려앉아야 한다. 마음속에 우상이 있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이 일부 종교 지도자들에게 하신 말씀을 기억하고 있는가?


인자야 이 사람들이 자기 우상을 마음에 들이며 죄악의 거치는 것을 자기 앞에 두었으니 그들이 내게 묻기를 내가 조금인들 용납하랴”(14:3).


우리의 목적이 온전히 하나님의 영광일 때 하나님은 기도를 들어주신다. 그리스도의 선물보다 오히려 그리스도 자신이 우리의 소원이 되어야 한다.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저가 네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리로다”(37:4).


사랑하는 자들아 만일 우리 마음이 우리를 책망할 것이 없으면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고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이라”(요일3:21,22).


사람들이 구하고도 받지 못하는 것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이다(4:3). 이것은 초대교회 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이다.



1. 의심

http://godtoyou.kr/b1010/114


3. 사랑이 없는 마음

http://godtoyou.kr/b1010/116


4. 할 일을 하지 않는 것

5. 은밀하게만 기도하는 것

http://godtoyou.kr/b1010/117


6. 찬송의 결핍

http://godtoyou.kr/b101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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