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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선다 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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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다싱을 읽고 (저자 오병학 목사)


책의 줄거리 선다싱는 1889년에 인도의 푼잡 지방의 람처에서 출생했다. 부모님은 모두 힌두교의 한 종파인 시크교의 신자로서 비교적 넉넉한 편이었다. 선다싱은 경건한 부모에게서 시크교의 신앙교육을 철저히 받으면서 자랐기 때문에 어려서부터 시크교에 대한 믿음이 깊이 박히게 되었다. 선다싱은 영리한 아이로 말하는 것이나 듣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이 뛰어났다. 선다싱의 어머니는 아버지보다 훨씬 더 신앙이 강하여 경건한 생활로 본을 보였고 아들에게 정성스레 일찍부터 종교교육을 열심히 시켰다. 아버지 셔싱은 아직 어린 아들을 신앙교육이라는 이름하에 지나치게 다루는 것을 바람직스럽게 여기지 않았다.


선다싱의 어머니는 선다가 시크교의 성직자가 되기를 원했지만 아버지는 높은 관리가 되기를 원했다. 선다는 7살 때 시크교의 도사에게 문답을 받았다. 기도문도 외우고 기타(힌두교의 경전이지만 그 내용이 중요했기에 시크교도 기타를 경전으로 삼았다)를 암송하기도 하였고 도사로부터 영특하다는 칭찬을 들었다. 한편 선다싱은 지혜롭고 영리할 뿐만 아니라 불쌍한 사람들에 대한 동정심과 자비심도 유난히 특별했다. 길을 가다가도 불쌍한 사람을 보게 되면 결코 그냥 지나치지 못하였다. 선다싱이 초등학교에 들어가 공부할 나이가 되었다. 선다싱이 태어나서 자란 람퍼에는 국가에서 세운 초등학교는 없었고 영국 선교사가 세운 사립학교가 하나있었다. 선다싱의 부모는 독실한 시크교도 였기에 기독교 학교에 보낸다는 것이 내키지 않았다. 그러나 국가에서 세운 초등학교에 보내게 되면 날마다 20리 이상 먼길을 걸어다녀야 한다는 부담이 있었다. 선다싱의 부모님은 아직 어린 선다싱을 고생시켜서는 안된다고 생각하여 기독교 학교를 보내게 되었다. 선다싱은 성경공부 시간에 게으름을 피우고 반감을 가지고 싫어하였고 선생님이 주는 성경을 찢어버리도 하였다.


선다싱이 14세 일때 어머니가 질병으로 숨을 거두었다. 선다싱은 시크교의 진리에 대하여 회의를 품게 되었고 어머니를 잃은 마음에 우울과 허무가 찾아오게 되었다. 선다싱은 예의 바른 소년에서 난폭한 소년으로 돌변하였고 험악한 말을 쓰며 또래들과 싸움을 하기도 하였고 학교에서 수업태도가 불량해서 아이들과 선생님들을 괴롭혔다. 선다싱은 아버지와 상의하여 푼잡에 있는 초등학교로 옮겼다. 그는 기독교 학교에 돌을 던지기도 하였고 교회에서 집회를 하면 쓰레기와 오물을 집어던지기까지 했다. 사람들은 선다싱을 향하여 탄식하기도 하였다. 선다싱은 어머니를 잃고 나서 정신적인 방황과 종교에 대한 배신감과 회의에서 이런일을 저지르고 있었다. 선다싱이 이런 과정을 겪으면서도 학교가는 것에 성실했으나 먼거리를 통학하면서 지친데다 풍토병인 말라리아에 걸리게 되었다. 선다싱이 회복이 되자 아버지는 다시 기독교 학교에 선다싱을 보내었다. 선다싱은 여전히 기독교에 반감을 가지고 있었고 결국은 성경을 불태우기도 하였다.


그러나 선다싱의 마음에 기독교의 하나님에 대한 궁금증이 너무나 강렬하게 일어나고 있었다. 선다싱은 십자가에서 고통당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이 마음에 강하게 부딪혀 왔으며 그는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기도드리기 시작했다. “오 선교사들이 전한 기독교의 하나님이여 당신이 참 된 신이라면 나에게 확실한 증거를 보여 주소서 그러면 시크교의 신을 버리고 평생동안 하나님만 위하여 살겠습니다.” 그는 간절히 기도한 후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오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조용히 귀를 기울였다. 그러나 아무런 반응이 오지 않았다. 때 마침 기차가 지나갔다. 선다싱은 마음에 비장한 각오를 하게 되었다. ‘나는 오늘 밤과 내일 새벽이 이를 때까지 하나님께 매달려 계속 기도해보리라. 그리고 그 때까지도 아무런 응답이 없으면 나는 내일 이 시간에 지나는 저 기차에 뛰어들어 자결하고 말 것이다.’ 그는 자신의 태도를 완벽하게 정돈하고 죽음을 준비하기 위해서 목욕까지 했다. 그는 기도하기 시작했다. “오 하나님 만약 당신이 살아계신 참된 신이라면 제가 기차에 몸을 던져 목숨을 끊기전에 그 증거를 보여 주소서 저는 확실한 증거가 없이는 절대로 당신을 믿을 수가 없습니다.” 어느새 밤은 깊어갔다. 선다싱은 지쳐갔다. 밤중이 지나고 새벽이 되어도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 절망스러웠다. 그의 눈에는 절망의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새벽 5시경에 눈을 감고 있는데 무언가 환한 빛이 그 주변을 감싸고 있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선다싱은 눈을 가만히 떴다. 그런데 갑자기 밝은 빛이 방안을 대낮처럼 환하게 비추고 있었다. 보름달보다 더 밝은 빛이었다. 놀라운 것은 그 빛 가운데 누군가 선명하게 나타났다. 당신은 누구십니까? 나는 하나님께서 이 땅에 보내셨던 아들 예수 그리스도다. 오 주여 어찌하여 감히 저같은 자를 찾아오셨습니까? 네가 하나님께 살아계시는 증거를 보여 달라고 간청하지 않았느냐 맞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죽기를 결심하고 그런 간청을 드렸어요 선다싱이 더욱 놀라게 만든 것은 예수님께서 인도인의 통용어인 힌두스탄 말로써 말씀하시는 것이었다. 주님의 말씀은 계속되었다. 선다싱아 똑똑히 보아라 십자가에 못박힌 나의 두 손과 창에 찔린 옆구리를 보라 내가 십자가에 죽은 것은 하나님이 살아계신다는 증거이며 너를 지극히 사랑하여 구원하기 위한 것이란다.


선다싱은 주께서 죽으신 일이 어찌 저의 구원이 됩니까? 내가 십자가에서 죽은 것은 온 세상 사람들의 죄 뿐이아니라 너의 죄까지도 다 지고서 죽은 것이기 때문이다. 선다싱은 그럼 저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제는 너의 죄가 다 사함을 받게 된 것을 믿고서 하나님께 영광과 감사와 찬양만을 드리도록 하여라 선다싱은 지금까지 살아계신 하나님을 부정하고 우상만 섬겨왔던 큰 죄를 다 용서하여 주소서 그리고 지금부터 저를 위하여 죽으신 주님만을 위하여 살게 하소서라고 기도했다. 주님은 선다싱에게 염려하지 말아라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너를 앞으로 큰 그릇으로 만들어 쓰실 것이다 그러니 방심하지 말고 기도로 준비하려무나라고 말씀하셨다. 선다싱은 주여 이제 주님만 따르겠습니다. 그러니 저를 붙잡아 주시고 빗나가지 않도록 도우소서라고 간구하였다.


주님은 어느새 눈 앞에서 사라지고 보이지 않았다. 선다싱은 주님을 직접만나는 체험을 하고 너무나 감격하였고 눈물을 한없이 흘렸고 이제부터 주님만을 위해서 살겠다고 다짐을 했다. 이것이 선다싱의 생애에 극적인 전환을 가져왔다. 이제는 하나님에 대한 확신과 기쁨과 평안이 그의 마음을 온통 사로잡았다. 선다싱은 계속해서 감사를 드렸다. 그후 선다싱은 아버지에게 주님을 만난 이야기를 했으며 아버지는 의아해하였으며 분노의 감정을 감추지 못했다. 아버지의 분노는 겉잡을 수가 없었고 가문의 신앙을 크게 모독하는 행위를 결코 용서할 수가 없다고 생각했다. 아버지는 추방을 선언했고 아들이라고 부르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길을 나선 선다싱은 곧 쓰러지게 되었고 의식을 잃었고 지나던 사람들에 의해서 도움을 받고 병원으로 가게 되었고 음식에 섞인 독약을 먹은 것이 확인되었다.


선다싱은 아버지를 의심하였다. 선다싱은 열심히 공부를 하였다. 선다싱은 16세 때 모슬렘 국가인 아프가니스탄을 향하여 최초의 선교여행을 떠났다. 이때부터 그는 도복과 터번차림에 신발을 신지 않은 맨발의 차림으로 전도자의 길을 걷게 되었다. 주님께서 나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박혀 참혹하게 죽기까지 하셨는데 맨발의 고통쯤이야 얼마나 대단한 일이 될까하는 생각이 그로 하여금 맨발의 전도자로 나서게 하였다. 어떤 때는 발이 가시에 찔리거나 상하여 치가 흐르기도 하였다. 그래서 사람들은 발에서 피가 나는 사도라고 부르기도 하였다. 아프가니스탄의 어느 마을에 들어서자 사람들은 돌을 던지고 첩자로 몰았다. 하마터면 죽음을 당할 뻔하였다. 그러나 많은 치유의 기적이 함께 하였고 사람들은 성자라고 하였고 도사라고 부르기도 하였다. 한 편 선다싱은 티벳선교를 꿈꾸기 시작하였다. 티벳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지대여서 1년내내 혹독하게 추운 겨울과 다름이 없었다. 인구는 6백만으로 여기저기 흩어져 살고 있었다. 그들은 전통적으로 불교의 한 종파인 라마교를 신봉하고 있었으며 통치자를 라마승의 수장이기도 하였다. 사람들은 성격이 난폭하여 외부인과 접촉을 기피하여 복음을 전하기 어려운 곳이었다. 14세기에 서양의 선교사들이 복음을 전하였고 교회도 세우기도 하였으나 실패를 거듭하였고 순교를 당하기도 한곳이었다.


선다싱은 티벳지방에 복음을 전하여야 한다는 소원이 불타올랐다.선다싱은 마침내 19세였을 때에(1908년) 혼자서 티벳선교에 나섰다. 그는 그때부터 1929년까지 약 20년 동안이나 혹독한 추위와 눈과 맹수와 박해를 극복하면서 티벳선교에 주력하였다. 1909년 그의 나이 20살이 되었을 때에 선다싱은 라호아에 있는 사도 요한 신학대학교에 입학하였다.입학한지 3년후에 졸업을 하였다. 졸업과 동시에 성직자의 자격을 수여받게 되었다. 그는 한곳에서 성직을 수행하는 것보다 자유로운 전도자가 되어 복음을 널리 전하고 싶어했다. 선다싱은 카일라스 지방을 거쳐서 티벳으로 다시 선교여행을 했는데 바윗길을 타고 가다가 발을 헛디디고 아래로 굴러 떨어지게 되었고 정신을 잃어버리게 되었다. 그런데 자신을 구출한 사람이 성경과 기도로만 살아가는 수도자 마하리쉬였고 생명의 은인이 되었다. 그후 그는 요한 신학교를 방문해서 토마스 아캠피스의 그리스도를 본받아라는 책을 추천받아 읽게 되었고 많은 감동과 도전을 받게 되었다. 선다싱은 자신이 신앙생활이 얼마나 부족하고 동떨어진 삶을 살고 있는지를 철저히 절감하고 예수님께서 40일 금식기도를 했던 것을 실천해 보기로 하고 데라던 지방의 숲속에서 금식을 시작하였고 20일이 지나서 그만 의식을 잃고 말았는데 그 지방의 농부 하나가 나무를 베기위해서 산으로 갔다가 선다싱을 발견하고 도움을 주었다.


한번은 선다싱이 티벳지방에 선교를 갔다가 중죄인을 감금하는 마른 우물에 던져졌다. 선다싱은 기절하였고 깬 후에 3일 동안 밤낮 하나님께 구원을 위해 기도하였다. 육중한 우물 두껑의 열쇠는 대 라마승만이 가지고 있어서 그의 명령이 없이는 절대로 다시 열릴 수가 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 간절히 기도하고 있을 때 위에서 뚜껑이 열리며 선다싱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처음에는 귀를 의심했지만 너무나 선명하였다 선다싱! 누구시오. 당신이 살아있군요. 자 줄을 내릴 테니 이 줄을 꼭 잡으시오. 선다싱은 하나님의 응답에 감사드리며 줄을 잡고 올라왔는데 우물 밖에는 아무도 없었다. 선다싱은 한 참후에 하나님의 천사가 자신을 구원한 것을 알게 되었다. 선다싱은 이 일로 더 큰 확신과 용기를 가디고 복음을 전하게 되었다.


한번은 히말라야 산맥 한 계곡에 자리잡은 간지 마을에 가서 복음을 전하였다. 간지 마을 사람들은 복음을 전하는 선다싱에게 인정 사정 없이 폭력을 휘둘러서 정신을 잃게 만들었고 헌 가마니로 싸서 마을밖에 내 버렸다. 그러데 밤이 되어 깨어났지만 단단한 밧줄로 꽁꽁 묵여 있어서 조금도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는 전갈과 독거미위 위협속에서 하나님께 간절하게 기도하였다. 그런데 두 사람이 나타나서 선다싱을 구해주었다. 선다싱은 누구시냐고 묻자 그들은 자신을 고행 선교단 소속의 수행자들인데 성령의 지시를 받고 찾아왔다고 말했다. 선다싱은 놀라운 체험을 하였다. 선다싱은 에베레스트 산 가까이 있는 일름이라는 마을에 복음을 전했다. 이 마을은 기독교를 엄격하게 금지하는 마을이었다. 그는 체포당했고 심문을 받았고 범법자로 몰렸다. 선다싱은 마을밖으로 끌려가서 나무기둥에 묶여 매달리게 되었다. 사람들은 선다싱을 조롱하고 비난하였다. 그러나 선다싱은 하나님을 찬양하고 기도하였는데 밤이 되어서 간지 마을에서 자신을 살렸던 고행 수행자들을 하나님께서 다시 보내서 나무기둥에 매달린 선다싱을 구해주었다.


선다싱은 기도와 명상의 시간을 보낸 후에 다시 티벳선교를 떠나게 되었다. 친구들은 언제 돌아올텐가 물었을 때 언제나 선다싱의 대답은 살아서 돌아오리라는 기대를 하지 않고 떠나네 이유는 언제 어떤 죽음을 당할지 모르기 때문이라고 대답하였다. 티벳 선교 여행은 늘 그런 위험 부담을 안고 있었다. 폭설이나 강풍, 맹수들의 공격, 티벳 사라들의 배척등 생명을 노리는 많은 위험들이 있었다. 그는 늘 맨발로 선교를 떠났다. 다행히 티벳 사람과 동행하게 되었다. 한 참 산길을 걷고 있을 때 눈더미 속에서 어떤 물체가 움직이고 있었다. 선다싱이 확인하니 길을 가다 쓰러져 죽어가는 사람이었다. 선다싱은 동행자에게 번갈아 가면서 업고 가자고 했으나 동행자는 그러면 다 죽을 수 밖에 없다며 혼자서 길을 가버렸다. 선다싱은 혼자서 그 사람을 업고 비틀거리며 산길을 등반하였고 등에 엎힌 사람은 선다싱의 체온으로 깨어나고 걸을 수가 있게 되었다. 선다싱의 사랑이 기적을 일으킨 것이었다. 두 사람이 한 참 산길을 가고 있을 때 또 한 사람이 쓰러져 있는 것을 보았는데 그 사람은 선다싱과 처음에 함께 동행하면서 얼었던 사람을 함께 업고 가자는 선다싱의 제의를 거절했던 티벳 사람이었다. 그는 벌써 얼어 죽어 있었다.


선다싱은 이런 일을 계기로 자기를 위하여 살고자 하는 자는 죽게 된다는 말씀을 확신하게 되었다. 선다싱의 거듭된 선교에 티벳지역 사람들도 복음의 열매를 서서히 맺게 되었다. 선다싱의 아버지인 셔싱도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크리스챤이 되었다. 그 후에 선다싱은 영국과 미국으로부터 전도집회 초청을 받아서 복음을 전했다. 그후 선다싱은 33세에 예루살렘 성지 순례도 하게 되었다. 1923년에 아버지 셔싱이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다. 그후 선다싱이 1929년 그의 나이가 40이었을 때에 티벳 선교를 가다가 실종되었다. 그의 행방을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그의 시신을 찾아보았지만 찾을 수가 없었다. 그의 최후는 하나님만이 알 뿐이었다. 선다싱을 읽으면서 나는 언제 선다싱처럼 주님을 닮았다는 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 생각해 본다. 너무나 잎만 무성한 무화과 나무는 아닌지 되돌아 보게 된다.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생애를 쏟아 부었던 선다싱처럼 바울처럼 나를 관제로 드릴 순 없을까? 주여 주여 긍휼히 여기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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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진현

서산 성도순복음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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