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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에 넘어지게 한 사람은 3인칭이 아니고 1인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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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에 넘어지게 한 사람은 3인칭이 아니고 1인칭이다.



주께서 내 마음을 시험하시고 밤에 내게 오시어서 나를 감찰하셨으나 흠을 찾지 못하셨사오니 내가 결심하고 입으로 범죄하지 아니하리이다(시17:3).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시험을 받는 것을 한편으로는 기뻐하시고, 다른 한편으로는 미워하십니다. 기뻐하실 때는 우리가 시험을 당해 기도할 때입니다. 미워하실 때는 우리가 시험에 져서 절망에 빠질 때입니다(루터).


시험에 넘어진 적이 있을 것이다.

그때 누가 시험에 넘어지게 했는가?

누군가가 생각날 것이다. 그러나 그 사람은 정답이 아니다. 시험에 넘어진 이유는 오직 하나, '내가' 잘못된 선택을 했기 때문이다.


1. 시험에 빠진 사람


시험에 대해 말할 때 내가 가장 강조하고 싶은 것은 '시험에 빠지게 한 사람은 오직 자기 자신이다' 라는 것이다. 사람들은 흔히 "누가 나를 시험 들게 했다" 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것은 아주 많이 잘못된 생각이다. 시험 거리는 제삼자가 준 것이겠지만 시험에 실패하여 시험에 든 사람은 오직 당사자이다. 그 누구도 우리가 시험에 실패하게 하지 못한다. 오직 내가 나를 시험에 빠지게 하는 것이다. 이것을 아는 것이 참으로 중요하다.


'시험에 빠진다.'

'시험에 빠지게 한다.'


어느 경우이든 주어는 2인칭이나 3인칭이 될 수 없다. 오직 1인칭만 주어가 된다. 이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하다. 목회자가 가장 싫어하는 말은 "누구 시험 들었대" 와 "누가 시험 들어서 교회 떠난대" 이다. 그런 사람들의 주 관심은 '누가 시험을 주었느냐' 이다.


시험에 든 사람보다 시험을 준 사람이 관심사가 되고 공공의 적이 된다. 희생양이 된다. 그래서 교회는 더 많은 아픔을 겪게 된다. 겉으로 시험 들었다고 말하지 않지만 실제로는 시험 들어서 교회를 떠나는 경우가 많다. 그러면 무엇 때문에, 누구 때문에 시험에 들었는지 많은 말과 상상이 오간다. 수많은 아픔이 쌓인다.


누군가 시험에 들어 교회를 떠날 때 교회는 상처를 받고 개인은 더욱더 나약한 신앙에 머무르게 된다. 아마 대부분의 목사는 그런 말을 아주 많이 들을 것이다. 가장 스트레스가 되는 말이다. 그런 말은 많은 이를 힘 빠지게 한다. 대부분 일하다가 시험 든 것이기 때문에 일 기피증 또는 대인 기피증이 생긴다.


보통은 시험에 든 사람을 위로하기 위해 "시험을 들게 한 사람이 잘못했다" 라고 말하곤 한다. 목회자는 무조건 사과한다. 그러나 무든 시험에 빠짐은 오직 시험에 빠진 사람의 문제이다. 물론 성경에서는 '연약한 사람을 실족하게 하지 말아야 한다'(고전8:9-13) 고 말한다. 실족하게 하는 사람의 죄가 있다. 그러나 모든 실족은 자기 자신의 잘못된 선택 때문이다. 그렇기에 시험에 빠진 것을 말할 때 다른 사람을 탓하지 말고 자신의 선택을 탓해야 한다.


2. 누구 때문에 시험을 들었다.


시험에 대해 우리가 가장 많이 듣는 말은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일 것이다. 우리는 시험에 들지 말아야 한다. 그런데 이 구절에 대한 오해가 많다.


'시험에 들지 않는다' 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시험 없는 세상을 말하는 것일까?

아니다. '시험에 들지 않는다' 는 것은 '시험이 없다' 는 말이 아니라 '시험에 빠지지 않는다', 즉 '시험에 실패하지 않는다' 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시험이 없는 삶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시험에 실패하지 않는 삶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


시험에 넘어진다는 것은 잘못된 선택을 한다는 말이다. 시험에서 무엇인가를 잃은 것은 결코 시험에 넘어진 것이 아니다. 시험 때문에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시는 선택을 한 것' 을 시험에 넘어진 것이라고 말한다.


물론 누군가의 말이나 행동이 시험에 빠지는 시발점이나 이유 중 하나가 될 수 있다. 그러나 그런 것은 작은 하나에 불과하다. 항상 시험에 빠진 주체는 자기 자신이다. 이것을 명심하고 또 명심해야 한다. 시험에 빠진 이유는 자기 자신이 그것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자기 자신이 자신을 시험에 빠뜨린 것이다.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은 자신이 자신을 시험에 빠뜨리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누군가가 우리를 시험의 늪에서 잠시 흔들 수는 있다. 그러나 그것이 결정적 원인이 될 때는 결코 없다. 시험의 늪에 확 빠지는 것은 항상 자기 자신의 선택에 의한 것이다. 그러니 어떤 사람이 밀었다고 말하지 마라. 밀어서 시험의 늪 가까이에 갈 수는 있으나 시험의 늪에 빠지게 한 것은 그 사람이 아니다. 자기 자신이다. 어떤 사람이 밀어서 시험의 늪에서 조금 흔들렸을 수는 있으나 그것이 원인이 되어 빠진 것은 아니다. 오직 자기 자신이 자신을 시험에 빠지게 한 것이다.


3. 시험에 넘어질 때의 주도권


시험에 빠진 것은 항상 자신의 어리석은 선택이라는 것을 기억하라. 시험에 빠지는 주권을 외부의 어떤 것에 두지 않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외부에 두면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시험에 빠지게 된다. 어쩔 수 없이 시험에 빠진다는 말이 가능하다. 어리석은 사람들은 자신들의 의지와 상관없이 어쩔 수 없이 외부의 요인 때문에 시험에 빠졌다고 생각한다. 자신이 시험에 빠진 것을 합리화하기 위해 그렇게 외부에 둔다.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그것은 합리화일 뿐이다. 나쁜 합리화이다.


시험에 빠진 이유를 외부에 두면 시험에 빠지는 일에 그가 선택할 수 있는 여지가 좁아져서 더욱더 많은 시험에 빠지게 될 것이다. 결국, 그 사람은 항상 시험에 빠지고 항상 자신을 시험에 빠지게 한 사람을 원망하면서 불평으로 가득한 인생을 살게 될 것이다.


과거를 돌아보며 자신을 시험에 빠지게 한 사람을 두고두고 원망하고 환경을 탓하며 그러한 것 때문에 자신의 인생이 망쳤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자신의 인생의 중요한 순간들을 외부에 의한 어쩔 수 없는 것으로 둘 때 인생은 수동적으로 어리석게 된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 때문에 시험에 들었다고 말하곤 한다. 물론 시험에 들 때는 어떤 상황이나 사람이 연관되어 있다. 그것이 시험에 든 사건에 어느 정도의 지분을 가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어떤 경우도 최종적으로 다른 사람 때문에 시험에 든 것이 아니라 자신이 어리석어 시험에 든 것이다. 누군가 시험에 빠졌다면 그 시험에서 가장 큰 주범은 시험에 빠진 자기 자신이다. 100펴센트 완벽하게 그 사람의 선택이다.


이것은 좋은 소식이 될 수도 있고 나쁜 소식이 될 수도 있다. 나쁜 소식인 것은 이제 남을 탓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동안의 나의 잘못된 인생을 남 탓할 수 없다. 그러나 좋은 소식이 중요하다. 이제 최소한 다른 사람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시험에 드는 때는 없다.


지긋지긋한 시험은 다른 사람 때문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선택 때문에 빠지는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내가 조절 가능하다는 것이다. 내가 어쩔 수 없이 당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선택하는 것이기 때문에 시험에 들지 않을 수 있다.


시험 자체에 대해 원망하거나 출제자를 탓하면 시험을 잘 치를 수 없다. 시험을 잘 치르는 것은 나에게 달린 문제이다. 그것을 제대로 인식할 때 시험을 잘 준비하고 치를 수 있다.


시험에 넘어지는 주도권을 제삼자에게 돌리면 그 사람은 시험을 이길 수 없다. 늘 다른 사람이 시험 거리를 주지 않아야 시험에 넘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주도권을 돌려받아라. 그것이 진실이다. 누가 시험에 넘어지게 하려 해도 내가 주도권을 쥐고 있으면 넘어지지 않는다. 내가 선택하기 나름이기 때문이다. 시험의 주도권을 회복하여 시험에 넘어지지 않기를 바란다.


4. 시험을 이겨라


'시험에 빠졌다' 는 것은 '시험에 실패했다' 는 것을 의미한다. '시험에 빠졌다' 는 말이 시험이 있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시험에 빠졌다', '시험에 들었다' 는 말은 보통 '시험에 실패했다' 를 의미하며 그것은 시험 때문에 '말씀을 어기게 되었다' 는 것을 의미한다.


시험이 있을 때 그것이 시련이든 유혹이든 어떤 모양이라도 선택의 순간에 '말씀을 따라 선택하면' 시험을 이긴 것이고, '말씀을 어기면' 시험에 진 것이다. 어려움 가운데 있다고 해도 그것이 시험에 빠진 것은 아니다. 욥이 모든 것을 잃었어도 시험에 빠지지 않았다. 시험에 빠졌다는 것은 그 시험 때문에 말씀을 어기게 된 것을 말한다.


그렇기에 욥은 시험을 당한 사람이지 시험에 빠진 사람이 아니다.


"시험" 을 의미하는 헬라어 '페이라스모스' 가 전치사 '속으로' 를 의미하는 '에이스'와 사용된 7번(마6:13; 26:41; 14:38; 눅11:4; 22:40; 22:46; 딤전6:9) 모두 '유혹' 이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시험에 빠진다" 는 것은 곧 '유혹에 넘어간다' 는 것을 의미한다. "시험에 들지 않게 기도하라" 는 것은 '유혹에 넘어가지 않게 기도하라' 는 것이다.


시험을 이긴다는 것은 그 시험을 벗어났다는 것이 아니다. 욥의 경우 재산을 잃어버렸다가 재산을 더 갖게 되었을 때 시험을 이긴 것이 아니라 시험의 때에 죄를 범하지 않은 그 순간들이 시험을 이긴 것이다.


우리는 시험을 이겨야 한다. 욥이 시험을 이겨도 그 이후 상황이 어떻게 될지 몰랐다. 전 재산을 잃은 상태로 끝날지 아니면 재산을 다시 회복할지, 그 이후 상황은 시험과 상관이 없다. 우리가 책임질 일이 아니다. 우리의 소관이 아니다. 우리의 소관은 시험의 때에 끝까지 말씀을 붙잡는 것이다. 그러면 시험을 이긴다.


5. 시험의 때에 집중해야 하는 것


유다가 예수님을 판 이야기를 생각해 보라. 예수님은 유다 때문에 시험을 당하셨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것 때문에 유다를 미워하지 않으심으로 시험을 이기셨다.


예수님은 그 사건에서 유다에게 집중하지 않으셨다. 예수님은 자신이 져야 하는 십자가에 집중하셨다. 예수님이 당하신 시험(십자가를 지는)은 유다가 수단이 되기는 했지만, 순전히 유다 때문에 일어난 일은 아니다. 그 이면에는 세상을 구원하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숨은 뜻이 있으셨다.


이 사건의 유발자인 유다는 그의 죄로 충분히 나쁜 사람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시험 유발자인 그를 미워하지 않으시고 단지 시험을 당하신다.


오늘날 우리가 겪는 시험들도 그렇다. 사람들은 누구 때문에 그 일이 일어났는지에 초점을 맞추고 미워할 대상자부터 찾곤 한다. 그러나 이제는 시험에서 미워할 희생자를 찾지 말고 그곳에서 내가 해야 하는 선택에 집중해야 한다.


시험을 이기려면 해결을 밖에서 찾지 않고 자신에게서 찾아야 한다. 시험에서 자신의 역량 밖이 아니라 자신의 역량 안의 일을 생각하고 다뤄야 한다. 자신의 역량 밖의 것에는 초연하라.


다시 말한다. 나를 시험에 빠지게 한 사람은 '다른 사람' 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 이다. 그러니 시험에 빠지지 않도록 정신 차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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