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 Wisdom from books
친구 분류

위로자

컨텐츠 정보

  • 1,026 조회

본문

11b3d38bdab099471df95cc1d9ece084_1656631346_0267.png
 

위로자


나는 왜 전도자보다 위로자로 먼저 되어야 하나? 우리가 위로 받아 내세 소망 갖게 됨이여 소망을 확실히 앎이 저분의 기쁨 된다 하지. 위로 받음으로 다른 영혼 위로할 수 있는 이 말씀 계시 속에서 배웠구(계시록).


나는 왜 설교자 보다 위로자가 먼저 되어야 하나? 참 위로자는 들어 주는 자라네. 남의 아픔 들어주고 같이 아퍼함이 저분이 원하시는 삶이기 때문이지.


상한 한 심령 위로받는 것 축복받는 일일세. 상한 한 심령 위로하는 것 당신께 축복드리는 일일 테야. 싱한 한 심령 위로받는 것이 새창조, 새창조라니까. 한 영혼 들어주어 위로하고 기도하여 붙잡고 말씀하여 전하게.


하지만 이제는 창6:6 에서 "왜 사람 만들었던고" 후회하셨던 하나님 아퍼하심의 근거를 찾고 이 슬픔에 몰두하여 거꾸로 하나님 위로자 되세. 왜냐구? 아버지의 아픔은 바로 내 배신의 상처, 그 흔적이야. 위로 없는 역경이나, 얻는 것 없는 손실 같은 것은 아예 창조 질서에 낀 적도 없다하니 괴로운 우리 삶은 오롯이 말씀과 기도 속에서만 위로로 살게 되어 있었어.


여보게, 이걸 몰랐지? 지금은 위로자가 여느 때보다 절실히 필요하다는 것을, 세상은 온통 패배와 실패 투성이라는 것을, 인간의 아픔을 나누는 곳, 아버지의 아픔을 덜어드리는 곳, 나눔은 저분 아픔 위로해 드린다는 이 경륜, 몰랐었겠다.


실은 상한 심령 위로 받는 것이 축복 받는 바로 그 일임을 자넨 생판 몰랐었지? 그리구 참된 위로는 패배를 감추지 않고 기념, 분발, 재기시킨다는 저 경륜 높은 신비,

자넨 정말 몰랐었지?


그래, 우선 고뇌를 끝어안고 위로에 관한 것은 모두 하나님께 맡기는 일, 고난당하는 벗에게도 일러주게. 위로란 결국 하나님이 다시 주시는 특수 은총이야. 고로 내가 나에게, 내가 벗에게 위로를 줄 수 있는 것은 저분이 주셨기 때문이지. 이런 것을 위로의 순환이라 해.


그리고 난 후 용기를 북돋는 자 되는 것을 삶의 가치있는 목적 목록에 첨가토록하세. 해 봐. 어쩌면 그 목록을 하나님께서는 생명록보다 더 귀하게 여기실 줄 뉘 아누?


그분은 병든 영혼의 병실 의사로 오셔서 내 영혼 위로하고 치료하러 오셨지. 말씀만 아니라 눈길로 숨결로. 아니, 전신으로 위로하러 오신 파라클레토스 (부를 때 늘 곁에 있어주시는 분, 찾을 때 늘 곁에 계셔주시는 분, 위로자, 중보자) 전신 위로자 예수 그리스도, 우주 그리스도.


나 위로 주셨으나, 위로 못 받고 위로 마다 하시고 가신 그분.


그리구 말일세. 여보게. 수치감 가진 사람 끼리끼리 모여 서로 위로해 주는 성도의 교통을 길들이러 오셨지.


죽어도 다시 못 돌아오는 삶 속에서 죽음밖에 위로할 길 없어 죽음 통해 위로한다는 유대인 묵시사상을 초월해서 죽음 너머 확실한 위로가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시간의 성화 속에 가르치러 오셨지(계시록). 시간의 재배합이로세.


그러니 자네 목회자보다 먼저 위로자 되게나. 주님 통해 받은 위로 나누는 자 되어 병든 영혼의 병실에서 자네부터 위로자 되어 환자들을 치유하게.


그리구 다시 한번 다짐하는 말 있어 이렇게 결어 하자면, 더더욱 우린(기독교인) 기다릴 수밖에 없는 사람들.


먼저 위로를 받음으로 내세의 소망을 갖고, 그래서! 소망을 확실히 알기에 저분의 기쁨이 되고, 그래서! 자네의 고뇌를 끌어안고 위로에 관한 것은 모두 그분께 맡기고 기다리면서. 그래.


그리고 난 후 다시 한번 용기를 북돋는 자 되어 삶의 값어치 있는 목적 목록에 확실히 나의 목적은 위로자라고 새겨보세. 그리구 이렇게 위로하세 "고난은 잠시뿐이라고." 괜찮다고 하시잖았어.


그러면 저분의 생명록에 자네와 그 영혼의 이름이 아마도 함께 오를 테지. 혹 이름이 못 오르더라도(그럴리 없네만) 괜찮어. 못 오를 사람들의 전담 위로자 돼 봐. 괜찮구 말구. 도성의 신부라고 부름 받지 않았소. 이 못난아!


창6:6 의 아버지의 상처는 자네 위로로만 치유되고 위로 받으실 터. 어서 위로자가 돼. 어서, 어서. 자네, 주님 붙좇는 병든 영혼의 병실 위로자!


그런데 말일세. 잔소리 몇 마디 얹어 끝내겠네만 참 위로자는 들어주는 자요, 듣고 나선 '괜찮어'라는 말로 얼러주는 자인데 그럼에도 위로와 희망이 벅찰 때는 두려움(경외)을 꼭 알아야 해.


그리고 (종말현상이 두드러질수록) 우리는 하나님 위로보다는 위로의 하나님만 찾고 있다는 사실. 하나님은 동전만 넣으면 위로를 주시는 자판기라니, 딱하지.


그리구 위로는 동전의 양면 같아서 앞과 뒤를 합쳐야 참 위로 노릇을 한다던데. 마치 성전세 치른 동전의 양면처럼 동전의 또 한 면에는 무슨 말이 적혀 있을까? 이야기 함세. 어디 해보세.


11b3d38bdab099471df95cc1d9ece084_1656630980_3294.jpg
 

♥ 웹선교 후원 : 토스뱅크 1000-0199-7978 (김병일)   

관련자료

댓글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Total 148 / 4 Page
Member Rank